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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패기

생일_쉰 세번째 이야기

생일_쉰 세번째 이야기

 

 

처음 길게 느껴졌던 일년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마마에게도 6월 27일까지 일하고 나머지 며칠은 일본 생활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것이라 이야기했다. 미락정에서 일하는 것이 내 생활의 전부라는 생각으로 일했는데 어느새 7개월이 지났다.
복상형은 요즘 나만 보면 한국에 가지 말고 미락정에서 10년간 일해보라고 했다. 그러면 35살에 3억은 충분히 벌어 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사장님은 골프광이었는데 미락정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나에게 뭔가 하나를 가르쳐 준다며 골프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5시에 밥을 먹고 나면 매일 10분가량 밥주걱이나 말려있는 물수건을 들고 골프 스윙 연습을 시켰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야마다 형이나 복상형에게도 골프를 가르쳐 주어 가끔 사장님과 라운딩도 한다고 했다.
쉬는 날이나 일요일이 되면 가부키쵸에 있는 실내 골프 연습장에 형들과 나를 데리고 가서 직접 공을 치게 하면서 자세를 잡아주기도 했다.

한국 돌아오기 전 사장님 배려로 생애 첫 골프 라운딩을 했다.

어린 나이에 골프채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이 어색했지만 공이 잘 맞아 공기를 가르고 시원하게 날아 갈 때는 뭔지 모를 희열을 느끼곤 했다.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조금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학기를 끝날 무렵 친하게 지냈던 선생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고 같은 반 한국 친구들에게도 내가 좋아하는 돈코츠 라면을 대접했다.
레벨4의 기말고사가 내 생일이기도 한 6월 22일 끝나면서 나의 일본어 학교의 생활도 끝났다.

일본에 계속 남아있는 같은 반 친구들은 선물을 주기도 했고 담임이었던 카타야마 선생님은 작게나마 다과회를 열어 주었다. 보잘것없는 나에게 모두들 너무 친절히 대해 주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생각하지도 못한 생일을 대접받는 것 같아 더욱 그랬다.

생일이라 미락정에서 야쓰미(쉬는날)를 잡아 주었지만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다과회가 끝나고 스즈노에게 갔는데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내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 준 것이었다. 신주쿠에 있는 아주 특이한 식당에 가자고 했는데 이곳은 세이류몽이라는 퓨전 중국식당이었고 천당과 지옥을 테마로 하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열려라 하면서 징을 쳐야 식당 문이 열렸는데 식당 내부도 아주 캄캄하게 되어 있었으며 화장실도 재미있게 꾸며 놓았었다. 한참 뒤에 한국에서 TV로 봤는데 여자 화장실의 경우 물을 내리면 앞 벽에서 갑자기 문이 열리며 괴물이 화장지를 들고 엉금엉금 기어 나오게 되어 있었고 남자 화장실의 경우 변기 앞에 서면 도깨비 모형의 변기가 움직였다.
스즈노와 헤어져 집에 와서 쉬고 있는데 10시 정도 지나 미락정이 한가해 지는 시간에 마마에게 전화가 왔다. 생일인데 가게에 와서 맥주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 가게에 갔더니 마마는 직접 미역국을 끓여 놓았고 내가 도착하자 여러 가지 고기를 구워주며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초라할 줄만 알았던 생일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