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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패기

아르바이트_아홉 번째 이야기

시간 아깝다!!!

빨리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될 텐데. 이 시기에 나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어떤 재물보다 값 비쌌다. 이때 시간관념이 자리 잡게 되었고 지금도 시간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생각에 무척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

일주일 만에 집을 구했다. 일주일이 이렇게 길 줄 몰랐다. 마치 한 달은 지난 느낌이었다.

편하게 쉴 곳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지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지어 먹고 시원하게 샤워하고 나면 기분이 너무너무 상쾌했다.

이제 아르바이트만 구하면 되는데 이렇게 생각을 시작하면 초조해 졌다.

또다시 신주쿠 가부키쵸로 향했다. 아무래도 학교도 가깝고 한국 가게도 많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한국 가게를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몇 군데 가보다 월매 주막이라는 곳에 갔는데 그곳은 일자리가 없었으나 오오쿠보 도리에 있는 배달민족으로 가 보라고 했다. 오오쿠보 도리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한류로 형성되어 있는 곳인데 가부키쵸 바로 옆 동네였다.

배달민족 식당에서 반갑데 맞아 주었고 일하는 시간대도 좋았다. 아 이제 드디어 일자리를 구하는구나 생각하는 찰나 ‘국제면허증은 당연히 있죠?’라는 말을 듣는 순간 희망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정말 힘들다 힘들어….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 돌아다녔다. 안 되는 일본어로 일본인 식당에도 가고, 갔던 곳에 또 가보고, 다시 미용실에도 가보고, 한국 사람이 있다 싶으면 무조건 들어가 말을 걸었다.

그렇게 며칠을 돌아다녔지만 허탕만 쳤고 일본어학교는 시작되었다.

나는 레벨 1, 완전 초보다. 한 반에 20명 정도며 미국인도 두 명이나 있었다.

여기서 같은 한국인끼리는 타국에서의 동병상련의 느낌과 서로 정보 등을 교환하기 위해 상당히 빨리 친구가 된다.

같은 반 학생들을 보니 벌써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 어떻게 구했냐고 물어보니 하나같이 먼저 와 있던 친구나 선배들이 구해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자리가 가장 많이 생기는 것이 호텔 청소라고 했다.

며칠 학교 다니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어디 어디 아르바이트 구하더라’라는 말이 돌곤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찾아가 보았지만 기회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심지어 Japan Dream이라는 기숙사의 중국 학생들에게 2만 엔을 주면 아르바이트를 구해 준다는 소리까지 있어 귀가 솔깃했지만 돈만 날리는 수 있어 포기했다.

일본 오기 전 일본 경기가 좋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힘들지 상상도 못 했다.

이제 더 이상 어디서 어떻게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할지 더욱더 막막해졌다. 이런 나 자신이 한심하고 가슴이 갑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