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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패기

공부와 돈의 균형

공부와 돈의 균형

 

캐슬호텔 사장의 경고 협박을 받고 집에 돌아와 수가 없었다. 피곤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새벽에 돌아왔기 때문에 금방 해가 떴다.

아침에 영길이 형이 일어나자 어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광분하며 자초지경을 설명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을 삭힐 수가 없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청소도 하고 주변에 풀도 뽑기도 했지만 상기된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JW에게 전화를 장사에 대해 논의를 했지만 시원한 대답은 들을 없었고 반면, 자리에서는 절대 장사를 해서는 된다고 강조만 뿐이었다. JW 극단적인 표현에 의하면 언제 맞을지 모른다.’ 였다. 괜히 내가 고집 부렸다가는 본인이 속해있는 사무실에 불통이 수도 있다고 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괜한 오기는 부리지 말자라고 생각을 했고 당장 다른 자리를 구하러 나섰다.

아무리 가부키쵸를 둘러보아도 마땅한 자리도 없고 다른 야타이 사이를 헤집고 들어 자리가 전혀 없었다. 어쩔 없이 가부키쵸에서 가깝고 한국인도 많으며 일본 사람도 많이 다니는 오오쿠보도리에 봤다. 보도가 좁아 장사 할만한 자리를 찾기란 어려웠다. 군데 정도 괜찮아 보이는 곳이 있어 건물 주인을 찾아가 상가 앞에서 장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 장사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만약 장사를 경찰에 신고를 것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 말라고 하던지, 해도 상관없지만 경찰에 신고한다니 이런 마인드가 일본인이라 그런가 싶었다.

속으로 말했다. ‘더럽다 더러워, 그래 한다 안해!’

돌파구를 찾아야 되는데 정말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기 위해 에덴기획에서 환전 한국으로의 송금을 담당하는 호철이형을 찾아갔다. 호철이 형은 한국에서 EBS방송국 에니메이션 연출을 했었고 일본 에니메이션을 공부하러 것이었다.

같이 오니기리(주먹밥) 먹으며 상황을 이야기 했고 이야기를 듣고 형은 야타이를 팔고 아르바이트를 하는게 나을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이 일하는 송금관련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 준다고 했다.

여기서 송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송금과 전혀 다르다.

불법 체류로 돈을 벌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외화획득(?) 위해 일본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고 있는 한국 아가씨들을 위한 시스템으로 수수료는 커녕 송금 거래가 많아지면 고객들에게 국제 전화카드를 주는 여러 가지 서비스가 주어졌다.

어떤 시스템으로 운용되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이 이렇게 일본에서 벌어들인 돈을 한국으로 보내졌다. 비공식 금융업체로 일부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은 전혀 걱정 없이 이용했다. 그리고 호철이 형은 일명 송금 브로커인데 열심히 가부키쵸를 다니며 자기 고객을 만들어 송금 금액을 늘려 나갔으며 일반 아르바이트보다 2~3 정도는 있었다.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음성적인 일이라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뒤로 며칠째 비가 내렸다.

아침 일찍 학교에 자습실에서 동안 밀린 공부를 했다. 처음 달은 공부하는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아도 쉽게 느껴졌는데 3개월째 접어드니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얼마 중간고사도 성적이 좋지 않아 선생님에게 충고를 듣기도 했었다. 사실 장사를 하면서 공부에는 전혀 신경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런 점은 뿐만 해당되는 아니었다.

주위 친구들 중에도 아르바이트 시간이 길거나 밤에 일을 하는 친구들은 잠을 제대로 없어 학교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고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 나중에는 유급을 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돈에 맛을 들인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 개씩 하는 친구도 있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결석을 하고, 심지어 학업은 포기하고 돈을 버는 것에만 치중하는 학생들도 생겼다. 당시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시간당 2,500 전후 였는데 여기는 한국돈으로 시간당 1만원 정도를 받았다.

20 넘게 지난 지금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시간당 금액에 차이가 없다.

공부를 하다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꿈이란 나무의 뿌리를 튼튼히 만들기 위해 일본에 왔고 일본말을 배우는 것이 번째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것인가? 한참을 생각했다.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에서 생활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한다. 공부와 일의 발랜스를 맞추자고 결론을 내렸고 야타이는 팔자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마음 먹고 나니 다음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정도 머리 속에 순서가 정해졌다.

 공부도 해야 하니 야타이는 팔고 안정적인 아르바이트를 구하자.’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시원한 빗줄기는 복잡했던 머리와 가슴을 쓸고 갔다.

마음이 한층 가벼워 졌고 수업 시간이 너무 재미 있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도 결정을 아주 빠르게 했던 같다. 그렇다고 사업을 벌인 것에 대해 절대 후회는 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사업이었지만 준비하면서 겪었던 어려움, 고뇌, 아픔등 현실에 부딪히며 배운 인생 공부는 나에게 아주 좋은 영양분이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