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알다시피 유난히 지진이 많은 나라다.
나도 일본에서 여러 번 크고 작게 지진을 경험했으나 엄청 놀란 적이 한 번 있었다.
8월 30일 일요일 아침이었다. 영길이 형이랑 나는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몸이 심하게 흔들려 놀라 눈을 떴다.여진은 계속되었고 내 눈앞에서는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진자처럼 흔들리고 있었으며 창틀에 놓아둔 여러 잡동사니가 바닥에 떨어졌다. 난 큰일이 나지 않을까 싶어 영길이 형을 깨웠지만 살며시 눈을 뜨더니 괜찮을 거라며 그냥 계속 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여진은 사라졌다.
아! 이것이 지진이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놀란 가슴을 싶게 가라앉지 않았다. 만약 이 정도 지진이 우리나라에 일어났다면 콩크리트 기반의 우리나라 집이나 건물은 아마도 심한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도쿄에 그런 지진이 일어난 것도 다소 드문 일이었는지 특보를 계속 내 보내고 있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흔들리는 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즐거워하는 여고생이 CCTV에 찍힌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도 상점이나 사무실 물건들이 떨어지는 장면들도 나왔다.
이런 사건이 있은 후 학교에서는 이케부쿠로에 위치한 소방센터로 지진 체험을 나갔고 강도 7의 강한 지진을 경험하며 지진이 일어났을 때의 행동에 대핸 배우기도 했다.
몰랐던 사실이었지만 지진으로 인한 대부분의 피해는 낙하물에 의한 인명피해나 가스 폭발에 의한 화재였다.
일본인들은 유아시절부터 지진에 대비한 훈련을 받는다고 하는데 만일을 대비해 평소에도 가구나 책상을 확실하게 고정시켜 놓고 비상시 바로 들고 나갈 수 있도록 손이 닿기 쉬운 곳에 의약품이나 비상 배낭등을 준비해 둔다고 했다. 웬만해서는 건물이 붕괴되는 일은 없으므로 상황에 맞춰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진도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지만 이 일이 최악의 날이 다가올 전초전이였을까?
장사를 하면서 한 달 동안 힘들기도 하였지만 너무 행복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고 돈을 벌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마음이 안정되고 모든 일들이 순조로웠다.
9월 4일, 그 날도 어김없이 장사를 나갔고 평소와는 다르게 장사가 더욱 잘 되는 것 같았다. 자정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인상이 차갑고 얼굴엔 기름이 번지르한 50대로 보이는 사람이 자꾸 내 주위를 맴 도는 것 같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다가와 대뜸 말을 걸었다.
전형적인 일본 교포의 말투였다.
“야! 너 한국인이야!”
“예, 그런데요.”
“야 이 새끼야! 누가 여기서 장사하래. 나 여기 캐슬 호텔 사장인데 내 건물 앞에 당장 이 야타이 치워. 알았어?”
처음부터 반말로 화를 내는 것이었다.
난 너무 당황스러웠고 피가 거꾸로 솟았고 심장은 요동쳤다.
하지만, 일단 좋게 이야기 하자고 마음 먹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 저는 학생이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좋게 생각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돌아 온 말은 더욱 냉정했다.
“ 젊은 놈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치우라면 당장 치워.”
그 때 나도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 여기가 당신 땅입니까?, 옆에 과일가게도 있고 이 자리는 호텔 사람들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왜 처음 보는 사람이 반말을 하시고 그것도 같은 한국 사람끼리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뭐 이새끼야, 당장 치우지 않으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없애버릴 테니까, 당장 치우는게 너 신상에 좋을꺼야.”
그렇게 말을 쏟아내고 호텔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 내 자리를 봐 주는 야쿠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경을 이야기 했다. 잠시 후 돌아온 말은 본인 사무실에서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거물급 야쿠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자리를 알아 봐 준다는 것이었다.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얼마나 고생하고 고민하고 준비한 장사인데, 일본사람도 아닌 같은 나라 사람이 그렇게 쫓아 내다니 너무 서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왔다.
나는 장사하다가 한국인이라면 장사를 제쳐두고 짐도 들어주고 여행객들에게 자세히 길도 안내해 주기도 했는데 정말 정말 서러웠다.
이노상도 내가 많이 걱정이 되었는지 어깨를 감싸며 위로해 주었다. 그러면서 저 사람들은 무서운 사람들이니 다른 자리를 같이 알아보자고 하기도 했지만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이 사건은 나에게 엄청난 전화위복이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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