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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패기

타카시_스물세 번째 이야기

1998년 당시 휴대폰(좌:일본, 우:한국)

 

 

1998, 한국에서는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은 흔하지 않았다. 설령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령 수준이었고 심지어 냉장고를 들고 다니는 수준이었다. 바지에 휴대폰을 넣으면 쪽이 쳐져 바지가 흘러내릴 정도였다. 당시 일본에 갔었고 그때 일본의 휴대폰은 너무 작고 가벼웠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역시 일본은 기술이 뛰어나고 사는 나라구나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최근 일본을 보았지만 가전제품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과거 20 수준과 크게 차이가 없는 느낌이었던 반면 우리나라는 백색 가전을 비롯하여 휴대폰등 일본을 앞질러 가고 있는 수준이다.

그런 일본 휴대폰을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닐 전자 상가에 진열되어 있는 작고 멋진 제품들에 눈을 떼지 못하고 구경하기도 했다.

학교 친구들도 생기고 안되지만 일본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 휴대폰을 마련했다. 당시엔 1 짜리 휴대폰이 많았다. 구형 모델로 통신비만 내면 휴대폰 가격을 1엔으로 판매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장사 준비를 마무리 야타이를 끌고 가는데 이상하게 끌리지 않아 바퀴를 바니 하나가 펑크가 있었다. 급한 데로 종로떡집 사장님께 바람 넣는 기계를 빌려 바람을 넣고 일을 나갔다.

시작부터 힘들었고 습하고 더워서 그런지 괜히 건들거리는 또래 젊은 일본 애들은 보니 심술이 나기도 했다. 게다가 열심히 장사 준비를 마치고 영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서양 여자가 내게로 와서 말도 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이태리에서 왔으며 모델이예요. 2만엔만 내면 재미있게 드릴께요.”

요염한 미소를 띄며 하는게 아닌가.

어떻게 재미있게 준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야타이 장사하려는 사람한테 하자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위를 먹은 같다.

시작은 평소와 달리 조금 힘들었지만 장사가 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 가부키쵸가 달아오를 때쯤 내가 장사하는 건너 말싸움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쿠자들끼리 싸움이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야쿠자들이 싸운다고 하길래 내심 기대했는데 치고 박더니 말싸움만 계속되었다. 그런 말싸움이 시작되고 잠시 야쿠자가 양쪽으로 100여명은 모인 같았다.그와 동시에 경찰도 수십 명이 모였고 일이 벌어지기 전에 야쿠자들을 해산시키기 바빴다. 허무하게 말싸움으로 끝나버렸고 나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노상 말에 의하면 같은 조직이라 칼부림은 나지 않은 같단다.

그렇게 싸움 구경을 하고 있는데 손님이 왔다. 노란 머리에 귀걸이를 하고 팔뚝에는 문신이 여기 저기 있었으며 손에는 헬멧을 들고 있었으며 옆에는 애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내가 한국 사람인걸 알고는 나보고 대뜸 친구 하자고 했다.

타카시 하라시마라고

반갑다며 손을 내미는데 맑게 웃는 그가 나도 마음에 들었다. 나이는 24살이라고 소개하며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고 했고 서로 말을 가르쳐 주자고 하길래 나도 좋다고 했다.

타카시랑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아쉽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는 연락하지 못했다.

타카시는 오토바이 수리점에서 일하고 있으며 자기가 벌어 생활하고 있고 아주 개성이 강한 친구였다. 일주일에 정도 나을 찾아와 장사 끝날 때까지 같이 있으며 서로 말을 교환해 가며 친해졌다. 가끔은 일이 끝나고 친한 포장마차에 가서 두루치기를 먹으며 소주를 마시기도 했는데 나보다 매운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한국 음식이 너무 맛있단다.

내가 쉬는 날이면 타카시는 자기 오토바이나 애인 자동차로 시내 구경을 시켜주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친구들만의 언어나 반말을 배우기도 하고 젊은이들의 유행어, 비속어를 배울 있었다. 네이티브와 이야기하며 노는 것도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같다. 문화적 차이로 일어나는 해프닝들도 재미있고 그러면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생기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