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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패기

험난한 일본 생활의 서막_세 번째 이야기

캡슐 호텔은 비록 좁았지만 깨끗하게 샤워하고 등을 바닥에 붙이니 상당히 포근함을 느꼈다. 비록 천장이 낮아 조금 갑갑했다. 하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나는 무척 놀라 잠에서 깼다.

내 몸은 어느새 캡슐과 일부가 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발 아래쪽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는데 이게 뭔가? 콧수염을 하고 느끼하게 생긴 일본인이 내 다리를 만지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 일본 호모가 같이 뭔가를 하자는 것 같았다. 당연히 일본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일본말을 할 수 없었기에 당황한 나머지 우리말로 “나가 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발로 밀어 버렸다.

그도 당황했는지 나만의 캡슐에서 뒷걸음질 쳤다. 참 어의가 없었다.

다소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런데 또 인기척이 나서 눈을 떠보니 또다시 나의 캡슐로 기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너무 황당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손짓으로 가라고 할 뿐.

첫날 밤부터 정말 이상한 일이 생기는 걸 보니 험난 한 일본 생활이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한 밤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본어학교 등록 영수증에 적혀 있는 학원 주소만 가지고 수십 번을 물어가며 요츠야에 있는 곳을 찾아갔다. 하필이면 일요일이라 입학 수속도 하지 못하고 위치만 확인하고 신주쿠 근처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발길을 돌렸다.

어제 맥도날드 햄버거 하나 사 먹은 뒤 한 끼도 먹지 않아 배가 무척 고팠지만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기로 했다.

배낭이 너무 무거워 전철역 라커에 넣어두고 신주쿠 시내를 돌아다니며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돌아 다녔다. 수십 군데 일본 식당을 들어가 보았지만 일본말을 할 수 없어 고용할 수 없다고 했다. 젊은 혈기에 가면 다 살길이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왔는데 정말 눈 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하고자 마음 먹으면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다.

자정이 지나자 더 이상 돌아다닐 힘이 없었다.

그저 신주쿠의 어느 광장 앞(나중 시간 지나 알고 보니 가부치쵸 COMA 극장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고질라로 유명한 그레이서리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에 앉아 지나가는 술 취한 젊은이들과 유흥가 삐끼로 일하는 흑인들을 바라보며 있으니 나름 재미있었다.

그렇게 나는 배낭을 기대고 노숙을 하고 있었다. 사실 여름이었고 주변에 앉아서 놀거나 술취해 자거나 하고 있어 전혀 이상하진 않았다.

왜 가부키쵸를 불야성이라 부르는지 이해가 됐다.

새벽 5시쯤 근처 소바집에서 뜨거운 물을 얻어 한국에서 가져온 봉지라면을 해 먹었다.

얼마나 맛있던지 건더기 한 조각 국물 한 방울까지 다 클리어했다.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것도 군대를 다녀와서 다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배낭에 몸을 기댄 채 잠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