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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패기

일자리가 생겼다_네 번째 이야기

 

1998년 6월 29일 월요일, 일본에 온 지 3일째다.

아침에 눈을 떠자마자 신주쿠에 있는 맥도날드에 100엔짜리 행사용 햄버거를 사 먹으러 들어갔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땐 24시간 영업을 하는 것 같았다. 술 취한 손님, 노숙자, 여행자들로 드문드문 앉아 있었고 사람들은 실내에서 담배를 마음대로 피워댔다. 이런 곳에서 실내 흡연이 허용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햄버거로 배를 채우고 이른 아침부터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주쿠에서 학교가 있는 요츠야라는 곳까지 걷게 되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 온 것이 한국반찬가게였다. 가게 안을 보니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고 무조건 부딪혀 보자 싶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햄버거를 먹었지만 맛있어 보이는 한국 음식과 반찬들을 보니 내 입에 침이 파도를 쳤다.

한국 사람을 만나니 반가웠고 다소 상기된 얼굴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사실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은 같은 한국인이라고 그렇게 반가울 리 없을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많이 서운한 것은 사실이었다.

반찬 가게를 나오며 한국인들이 많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가부키쵸에 가보란다. 그리고 한국마트가 있어 일자리가 있을 수도 있으니 물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다시 가부키쵸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고 안 사실이지만 요츠야에서 가부키쵸까지 걸어서 15분 거리였지만 길을 잘 알지 못해 전철을 타기도 했고 돌아 돌아가기도 한 것 같다.

가부키쵸에 도착해 장터라는 마트를 찾아갔고 아르바이트를 구한다고 하니 국제운전면허증이 있는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또다시 눈 앞이 깜깜해졌고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다. 출국하기 전 면허증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설마 필요할까 싶어 새로 만들지도 않았기에 너무 후회스러웠다.

그러고 나서도 여러 수십 군데를 가 보았다. 확실히 가부키쵸는 한국인이 많은지 한국 식당도 많았다. 심지어 군대 있을 때 깍새 생활을 한 것을 이야기하며 한인 미용실도 가 보았지만 사람을 구하진 않았다.

그렇게 저녁이 되었고 가부키쵸 한가운데 있는 실내야구장 옆을 지나가는데 또래로 보이는 한국 학생이 한국식 붕어빵을 구워 팔고 있었다. 무언가 정보를 얻기 위해 말을 걸었다. 본인도 어학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온 대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름은 인석이라고 소개했으며 나이는 나보다 1살 위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덩치 큰 20대 후반의 남성이 붕어빵 야타이에 나타났다. 딱 봐도 건달이었다. 모두 JW라고 불렀고 그는 교포는 아니었지만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여기까지 와서 가부키쵸를 관리하는 야쿠자의 행동대원이었다. 그때는 가부키쵸 거리에서 야타이 장사를 하려면 야쿠자에게 자릿세를 내어야 했다.

인석이 형이 나의 상황을 JW에게 이야기 했고 JW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 전화를 하더니 나보고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난 뭐든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고 그는 나를 치바라는 곳으로 보냈다.

곧장 신주쿠역에서 전철을 타고 출발해 한 시간 이상을 달려 치바역에 도착했고 이야기 듣던 대로 출구로 나가니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었다. 한 명은 드레스 핏이 아주 좋고 곱상하게 생겼고 한 명은 덩치였다.

그 사람들은 나를 자동차에 태워 어디론가 가더니 센토(동네 목욕탕)에 데려갔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데 둘 다 문신이 장난 아니었다. 그렇다고 쫄 내가 아니지.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못하다 목욕을 하니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목욕을 마치고 자기네들 숙소라고 나를 데려갔다. 내가 갔을 땐 방 2개와 거실이 있는 아파트 형태의 집이었는데 좁은 집에 남자만 14~5명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방마다 사방에 양복이 수 없이 걸려 있었다. 꼭 연예인 드레스 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