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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패기

효도_마흔 번째 이야기

효도_마흔 번째 이야기

 

난 1남 3녀중 둘째로 태어났고 남자는 나 뿐이었다.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어렸을 때부터 개구쟁이 인데다 중고등학교를 다닌 때는 사고도 많이 치고 다니며 부모님 말씀을 지독하게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해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린 적도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마음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해 드릴 것이 없나 생각하다 문득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일본에 와서 지내면서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부모님을 일본에 모셔서 내가 여행을 시켜드리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11월, 12월 두 달간 받을 월급을 계산해 보니 꽤나 많은 돈이 될 것 같았고 그 돈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았다.
겨울에는 부모님과 막내 동생을 그리고 한국에 귀국하기 전에는 누나와 동생을 일본에 부르기로 했다.
12월 초부터 집에 연락을 해 수속을 밟게 했다.
아버지는 군인이셨는데 그 당시 군인 신분으로 해외 여행가는 절차가 무척 복잡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일본 여행을 시켜 준다고 하니 모든 수고를 감수하고 번거로운 수속을 마무리 지었다.
부모님과 동생이 오는 것을 알고 있던 영길이 형은 마침 그 기간 동안 한국에 갔다 온다며 시이나마치 집에 지내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고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이 오기로 한 12월 28일만 손꼽아 기다렸다.
가족들은 일본에서 만나 같이 여행을 하게 된다니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어느새 학교에 나의 이야기가 소문이 퍼져 학교 선생님들이나 가부키쵸 주변 사람들이 어디 갈거냐, 어디 가봐라 하면서 나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드디어 28일이 되었다.
도착 예정 시간인 오후 2시가 훨씬 지났는데 나오지 않았고 나리타 공항 입국장 2군데를 여기 갔다 저기 갔다 30분 가량을 마음 졸이며 뛰어 다녔다. 그렇게 30분 가량 지나 멀리 가족들이 보이는데 그런 기쁜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노상과 미락정에서 저녁 식사 약속이 되어 있었다. 가족들에게도 과일 가게 이노상 이야기를 많이 했었고 이노상에게도 가족들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서로 만나보고 싶어했다. 
이노상을 만나 내가 일하는 미락정에서 식사를 하는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약간 서먹서먹했지만 부모님이나 이노상 모두 상당히 즐거워했다. 
식사를 마치고 시이나마치 집까지 갈 시간이 없어 신오오쿠보에 있는 숙소에 잠시 쉴 수 있도록 보내드리고 난 일을 하러 돌아와야만 했다.
일본에서는 신정을 명절로 미락정은 12월 31일부터 다음해 1월 3일까지 4일간 일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모님과 동생이 온 날로부터 3일간은 일을 해야만 했다.
11시쯤이었나 마마가 부모님을 모셔 오라고 했다. 난 괜찮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모셔 오라고 했다. 난 내가 일하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이기 싫었지만 마마의 뜻을 알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미락정과 숙소는 멀지 않아 직접 모시고 왔고 마마는 미락정 최고급 음식들과 술로 부모님을 극진히 모셨다. 그리고 잘 하지도 못하는 한국말로 내 자랑을 늘어놓았다. 
흐뭇해 하시는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참을 계시다 새벽 손님들이 들어 닥치자 숙소로 돌아 가셨다.

일을 끝내고 숙소로 와 짐을 챙겨 시이나마치 집으로 옮겼다.
부모님과 동생이 옆에 있으니 정말 꿈만 같았고 나름 효도를 한다고 생각하니 나 스스로 대견하고 행복함을 느꼈다.
11시쯤 일어나 시이나마치에서 가까운 이케부쿠로 시내를 구경했다. 일본 라면과 우동도 사먹고 백화점 그리고 100엔샾 등을 구경했는데 해외 여행이 처음이라 그런지 구경만 해도 재미있어 했다. 특히 막내 동생 혜승이는 헬로우 키티샾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다 나는 일을 하러 신주쿠로 가야만 했고 돌아가는 길을 자세히 가르쳐 드렸다. 
다음 날은 전날과 비슷하게 신주쿠 시내를 둘러 보고 난 또 다시 일을 하러 가야만 했다.
부모님과 동생이 도착해서 3일간은 일을 했지만 이후 4일을 온전히 가족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일도 힘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