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도 지나지 않았지만 신주쿠 골목골목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돌아다닌 것 같다.
아침이고 밤이고 어디를 가든 항상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호무리스라 부르는 사람들이다.
일본에서 무척 놀랐던 일 중 하나가 홈리스가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정말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았다.
나도 집 없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닐 때 신주쿠 COMA 극장 앞에서 박스를 깔고 옆에서 같이 잠을 자기도 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그들의 생활을 경험했다.
아침에 까마귀나 청소차 소리를 듣고 잠을 깨고 씻을 곳이 없어 전혀 씻지를 않고 낮에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술에 취해 잠이 든다.
일본 거지들은 구걸을 하지 않는다. 만약 구걸을 하다 발각이 되면 나라에서 지원금이 나오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 대신 쓰레기통을 뒤져 상한 음식을 먹기도 하고 거리에 널 부러져 있는 음료수나 술병을 핥아먹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빈 병에 한 방울 한 방울 정성스럽게 모아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마시기도 했다.
가부키쵸에 유명한 거지가 있었는데 매일 똑깥은 옷에 수염과 머리는 몇 년을 씻지 않았는지 완전 떡이 져 있었고 지나가면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오사카 사투리로 계속 뭔가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데 나중에 지인을 통해 들은 내용인데 자기는 오사카에 있던 야쿠자였고 여러 사람들과 싸웠다는 이야기 등을 주로 한다고 했다. 지금도 돌아다니고 있을지 궁금하다.
한참 이후에 한국에서 서울역 앞 홈리스들을 인터뷰 한 방송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 모두 각자 다른 이유에서 홈리스가 되었다. 아마 일본에서 본 홈리스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신주쿠 뿐만 아니었다. 조금 큰 전철 역 주변에는 항상 거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각 구청에서는 홈리스를 위해 무료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뜨거워 지는 일이 있었다.
하루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신주쿠 구청을 지나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가는 길이었다. 신주쿠 구청 옆 안쪽 공간에서 무료 배식을 하고 있었고 홈리스를 비롯하여 나이 드신 분들이 컵 라면을 받아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나도 무척 배가 고팠고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쪽으로 향했고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다가오고 배식을 하고 있는 텐트 앞에는 뭘 적어내는 종이가 있었다. 뭔가 싶어 기웃거리니 내 앞에 서있던 홈리스가 친절하게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야 된다고 했다.
난 당당히 적고 내 차례를 기다렸고 내 차례가 되자 배식을 하고 있는 중년의 여성에게 종이를 내밀었다.그러자 그 여성은 내가 내민 종이를 보고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안 된다고 손짓을 하며 가라고 했다.
잘 되지 않는 일본어로 왜 안되냐고 물어보니 나이가 너무 어려서 안 된다고 했고 가서 일자리나 구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있던 내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평생 잊어버릴 수가 없다.
그래 맞다. 젊은데 뭘 못하겠나.
또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열심히 다녀보자 다짐했다.
이렇게 잘 사는 나라에 왜 이렇게 거지가 많은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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