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었다. 7월 말, 일본 특히, 도쿄의 더위는 정말 끔찍했다.
너무 습하기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여기 여름은 9월까지 간다는데 걱정이었다.
일요일, 오늘 계약금을 주기로 했다. 한국에서 올 때 150만 원을 일본 화폐랑 여행자 수표로 일정 비율로 바꿔 가져 왔는데 여행자 수표는 현금으로 바꿀 수가 없었다. 사장님을 만나 사정을 말씀드리고 현금 7만 엔만 먼저 드리고 나머지 잔금은 두 번에 걸쳐 나누어 드리기로 했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야타이 장사를 시작할 자리를 구하러 신주쿠를 둘러보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닐 때와 달리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니 안 보이던 길거리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얼마 전 유명한 실험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이처럼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가부키쵸에 에니라는 슈퍼마켓 근처 사람도 많이 다니는 목 좋은 자리가 있어 근처 차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한국인 아저씨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저씨, 혹시 여기서 장사를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안돼요, 안돼. 절대 안 돼!”
“같은 나라 사람끼리 잘 좀 봐주세요.”
거기 근처에서는 본인 말고는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뜸 하는 말이
“ 나도 한국인이지만 여기 일본에서 한국 사람이 제일 싫어!”
그 소릴 들었을 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면서 한방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도쿄 가부키쵸 한가운데서 한국인들끼리 음성을 높이고 싸운다는 것이 더욱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냥 한 숨을 내쉬며 뒤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같은 동포인데 왜 싫을까? 일본에서 한국인들끼리 도대체 어떠하길래? 내가 만난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좋았다. 그래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몇 번이고 되새기며 생각하게 되었다.
어디가 괜찮을까 생각하며 다시 돌아다녔다. 그러다 캐슬 호텔(지금은 없어졌다) 앞 일본인이 과일 장사를 하는 곳 바로 옆에 야타이가 딱 들어갈 만큼의 자리가 눈에 띄었다. 바로 저기다 싶었다.
처음에 과일 장사하는 일본인에게 옆에서 장사해도 되는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마침 옆 골목에서 포장마차 장사를 준비하는 안면 있던 한국인 형에게 통역을 부탁했고 그 형이 같이 가서 옆자리에서 야타이를 하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기 땅도 아니고 건물 땅도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했다.
날아갈 듯이 기뻤다.
이제 준비는 거의 끝났다 싶었지만 끝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자리와 상권을 보호해 줄 보호자(야쿠자)가 필요했다. 주변 형들에게 이야기했지만 만약 소개했다가 사건 사고라도 생기면 서로 곤란하다며 스스로 찾아보라고 했다.
일이 풀리려고 하니 우연히도 호스트 일자리를 소개시켜준 JW를 만났다. 혹시나 싶어 장사를 시작하려고 자리를 보았는데 뒤를 봐줄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JW는 사무실에 이야기해 본다고 했고 다음 날 연락이 왔다. JW가 일하는 사무실 큰 형님이 허락했다며 캐슬 호텔 앞에서 장사를 해도 좋다고 했다. 첫 개시 하는 날 연락하면 명함을 가져다주겠다고 했고 그날 멘도비(보호비) 2만 엔을 달라고 했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는 돈 벌면 뭘 할지 상상의 나래를 끝없이 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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