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에 미국인이 2명 있었는데 둘 다 여자였다. 한 명은 수잔이라는 라틴계 미인이었고 또 한 명은 레슬리라는 갈색머리에 키는 180 정도,나이는 19살에 푼수 같아 보였지만 하버드대학을 다니며 프랑스어가 유창한 아주 똑똑한 아이였다.
레슬리가 내 옆에 자주 앉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미국에 있는 레슬리 남자 친구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친구는 키도 크고 덩치도 조금 있어 그런지 엄청 먹었다. 시는 시간만 되면 군것질하러 편의점 가자고 했다. 그럴 때면 돈을 아껴야 하는 나는 조금 난감하기도 했다.
그 날은 신주쿠에 스시를 먹으러 같이 가자고 했다. 너무 조르길래 승낙하고 말았다. 원래 동수형이랑 같이 통장 만들 계획이었기에 동수형도 같이 가게 되었다.
100엔 회전스시집이 여러 군데 있었는데 레슬리가 자주 가는 곳으로 갔다. 사실 여기 스시가 그렇게 고급은 아니지만 한국의 고급 스시보다 맛있다는 생각을 했다.
동수형은 2접시 밖에 먹지 않았다. 속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사실은 돈이 아까워 먹지 못한 것이었다. 식사를 하는 도중 주말 일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레슬리가 트레킹을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 싫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동수형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힘들다고 했고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 같이 가기로 했다.
일은 주말이 지난 다음부터 시작하기로 하여 주말 동안 시간이 있었고 마지막 여유가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레슬리와는 주말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신주쿠역 근처 은행들이 많이 모여 있어 형이랑 통장을 만들러 갔다. 돈 벌기 시작하면 돈 관리할 통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은행이 있었는데 사쿠라 은행과 후지 은행은 외국인 등록증이 필수였지만 미쯔비시은행은 여권과 도장만 있으면 되었다. 다소 짜증났던 것이 서양인은 여권에 서명만으로 통장 개설이 되는데 한국인은 도장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근처 문방구에서 강 발음과 가장 유사한 일본어 발음 칸(官) 한자의 도장을 사갔는데 별 문제 없이 개설이 가능했다.
동수형 일하러 갈 시간이 되었고 형이 같이 가게에 가서 저녁 먹고 가라고 했다. 형은 가부키쵸의 어느 한국 크라브에 웨이터로 들어갔단다. 일명 한국 크라브는 클럽의 일본말인데 우리나라 가라오케 술집과 유사하며 한국 접대부 아가씨들이 일본인을 상대하는 술집이었다.
형이 일찍 가서 청소를 하는데 그곳 주방에서 밥을 챙겨 먹는다고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다음 날 레슬리와 신주쿠 ALTA스튜디오 앞에서 만났다. 그리고 레슬리가 이끄는 대로 난 그냥 따라갈 뿐이었다. 내가 아는 첫 미국인이었고 같은 반에서 일본어를 배우는 외국인과 같이 여행을 한다는 것이 내심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케부쿠로에서 다시 치치부 행 열차를 갈아탔다. 가는 길에 레슬리가 한국 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이유는 남자 친구로부터 일주일 동안 연락이 없다며 연락되면 한국말로 욕을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멍멍이 욕과 쌍시옷 들어가는 욕을 가르쳐 주었는데 노랑머리 여자 미국인이 욕을 해대니 얼마나 웃기던지 혼자 한참을 웃었다.
치치부에 도착해 부코산이라는 곳을 트레킹 했다.정상에 가는 길은 그렇게 가파르지 않았고 숲은 무척 울창했다. 몇 백 년이 된 듯한 삼나무들이 무척 많았는데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 산과는 분위기가 무척 달랐다.
정상에 올랐을 땐 일본에 온 지 처음으로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정말 재미있는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레슬리는 단기 연수생으로 3개월 연수 후 미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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