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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패기

첫 월급_서른 여섯 번째 이야기

월급_서른 여섯 번째 이야기

 

11월 5일이다. 
미락정의 월급날이 바로 매달 5일이었다. 며칠 일은 안 했지만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잔뜩 기대에 부푼 날이기도 했다.
학교에 가니 동광이가 본인, 미국인 여자애 나오미, 그리고 최상이라고 부르는 형 세 명이 같이 놀기로 했다며 나를 놀렸다. 나도 귀여운 나오미랑 놀고 싶은데 아르바이트를 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동광이는 일본 뷔페 식당에서 일하고 최상은 한국식 나이트클럽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쉬는 날을 맞췄다고 했다. 동광이는 가끔 술에 취하면 내가 보고 싶다며 일하고 있는 가게에 나를 불러내곤 했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 졌지만 꼭 만나고 싶은 친구 중에 한 명이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끔 여유를 가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돈 걱정 없이 부모님께 의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사실 나도 굳이 요청하였다면 넉넉하지 않았겠지만 아버지에게 돈을 받아가며 생활 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저녁 타임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상이 갑자기 그만 두겠다고 했다. 아마 바쁘지 않은 가게에서 좋은 조건으로 오라고 한 것 같다. 이 일 때문에 신상과 친하게 지내던 야마다 형이 기분이 많이 좋지 않았고 야마다 형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말이 없어지고 일하는 속도는 2배로 증가했다. 
한참 일하던 도중 미락정 카이쵸(회장)가 와서 잠시 틈을 내어 직원들에게 월급을 나누어 주었다.나는 지난 8일간 일 한 만큼만 받았는데 8만2천엔이 들어 있었다. 8일 일했는데 우리나라돈으로 80만원이 넘는 돈을 받다니 표현은 안 했지만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야타이 장사를 하면서 벌던 돈과는 또 다른 기쁨이 있었다.
너무 기뻐서 그런지 방심하다 칼에 베였다. 야타이 장사 할 때와 마찬가지로 살이 많이 달아 날 정도 였다. 피가 많이 났고 마마는 비상약통에서 이상한 스프레이를 상처에 뿌렸는데 노란막이 형성되더니 지혈이 되었다. 그리고 수술용 장갑을 자른 것 같은 손가락 장갑을 끼워 주었다. 다쳤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마침 영길이형 가게 이자카야를 개업하는 날이라 일을 마치고 야마다 형에게 소주 한 잔 하러 가자고 했다. 신상이 그만 둔다고 한 일도 있고 월급을 받기도 해서였다.
가게 이름은 주차장으로 한글로 되어 있었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늦은 시간이었지만 손님들이 꽤 많았다. 홀은 윤정이 누나가 맡고 있었다.

해외 판매용 진로 소주

야마다 형과 나는 진로 소주 한 병과 과일 안주를 시켰다. 
일본에서 진로 소주는 한국의 소주와 모양이나 양에 차이가 있다. 특히 이런 크라브 또는 스나크에서 파는 소주는 가격도 비쌌다. 소주 한 병을 시켜서 물이나 소다 등을 타 마셨다. 그렇지 않으면 우롱차를 타 마시고 했다. 한국처럼 그냥 소주 자체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술이 남으면 Keeping도 가능할 정도였다.
영길이 형이 어떻게든 시작한 장사니 잘 되었으면 좋겠다.
집에 가는 길에 야마다 형이 비디오를 빌려 가자고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거의 발달하지 않았고 한국인들은 한국 방송을 녹화하여 빌려주는 집이 여러 곳 있었다.
가부키쵸와 그 옆 동네인 오오쿠보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술집도 많았지만 식당, 떡집, 한국 슈퍼, 비디오 대여점 등 작지만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고 있었다.
오양 비디오가 막 나왔을 때 였는데 무단 복제되어 1000엔에 팔기도 했다.
야마다 형은 낮이나 쉬는 날 한국 비디오를 많이 봤는데 나는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일본어를 배우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잘 알아 듣지는 못해도 시간이 되면 일본 쇼 프로그램을 봤는데 한국 방송과 다른 점이 나에겐 재미있었고 때론 야하기도 했다. 
가능한 많은 일본 생활을 접하고 싶었고 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