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시작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내 야타이 앞 캐슬호텔 1층에 한국 냉면집이 개업을 했다. 개업을 맞이해서 그런지 아니면 냉면집 주인이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개업하는 날 연예인들이 몇 명씩 왔다갔다 했다. 그 중 ‘이은하’라는 가수가 냉면집 정문에 나와 한참을 서 있길래 나는 다가가 무척 반가운 척 했다. 그리고 사인까지 해 달라며 종이를 내 밀었다. 사인을 하면서 어떻게 일본 왔냐고 묻길래 일본어를 배우러 온 학생이며 학교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나는 그 분의 팬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내 타마고야끼를 사 줄지 몰라 말을 건 것이었다. 그렇게 사인 받은 종이를 다시 건네 받으며 맛 좀 보시라고 했다.
“한 개 얼마예요?”
“하나 오백엔이요.”
“이천엔치 싸 주실래요.”
야! 이천엔이 어디야. 작전 성공이었다.
이노상은 그런 내가 이상했던지 아는 사람이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인데 타마고야끼를 팔기 위해 혹시나 싶어 아는 척 했다고 하니 배꼽을 잡고 웃었다.
장사를 시작하면 어김없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이랏샤이마세, 이랏샤이마세, 오이시이 타마고야키 이카가데쇼유까~~”
몇 시간을 외치다 보면 나중엔 혀가 꼬여 발음이 제대로 안될 때도 있었다.
장사가 조금 안 된다고 생각 들면 지나가는 사람을 끌고 와서 한 번 맛 보라며 억지로 팔기도 했다. 사실 대부분 젊은 가부키쵸 아가씨들이었다. 예쁜 여자 손님이 오면 가위 바위 보를 해서 내가 이기면 그대로 받고 질 경우에는 하나 더 얹어주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도 새로운 야타이가 생기니 뭔가 싶어 사먹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사 먹는 단골도 생기기 시작했다. 중국 아가씨들이 있는 술집 매니저는 거의 매일 저녁 때 하나씩 사먹고 새벽에 또 사먹기도 했다. 맛있었나 보다. 가끔 사먹지 않는 날에는 배가 불러서 못 먹겠다며 미안한 사인을 보내기도 했다.
가끔은 크라브에서 여러 개를 시켜서 배달까지 해 주기도 했다. 장사가 조금씩 잘 되고 돈이 들어오니 내 사업을 한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게 느껴졌다. 돈 버는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또 가끔은 거스름돈이나 팁을 주고 가는 손님이 있는데 하루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일본인이 양쪽에 한국 아가씨 끼고 지나가고 있었고 모두 술에 취해 있었다. 혹시 사먹지 않을까 싶어 그쪽을 향해 크게 외쳤다.
“이랏샤이마세~~”
그 남자는 그 소리를 듣고 내 야타이 앞으로 오더니 지갑을 꺼내 만엔짜리 하나를 꺼내 주더니 나무젓가락만 몽땅 쥐더니 자기네들끼리 웃고 난리다. 몇 개 드리냐고 물었지만 듣지도 않고 나무젓가락만 들고 가 버리는 것이었다. 쉽게 돈 벌어 좋았지만 황당했다, 그리고 멀리 사라져가는 그들 일행을 한 참 쳐다보았다. 한편으로 다시 와서 돈 달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 그러나 다시 오지 않았다.
평균 매상이 15,000엔 정도였는데 그날은 그 술 취한 진상 때문에 25,000엔을 벌 수 있었다.
사실 재료비는 보통 2,500엔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꽤나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새벽 늦게까지 일하며 힘들었지만 너무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집에 갈 땐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항상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나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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